1848 혁명 (jan 1, 1848 – jan 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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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불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시작됐다. 1월에는 시칠리아에서 양시칠리아 왕국의 강압 통치에 항거하는 농민 중심의 민중 봉기가 폭발했고, 2월에는 루이필리프의 7월 왕정에 맞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파리 시민들이 봉기,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프랑스 2월 혁명) 한번 일어나기 시작한 혁명은 걷잡을 수 없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3월에는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 베를린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서 혁명이 폭발,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는 영국으로 망명했고 바이에른 왕국, 작센 왕국 같은 독일 연방의 나라들에서도 시민 봉기가 일어났다. 다민족국가였던 오스트리아에서는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폴란드인이 잇따라 봉기해 독립을 요구했다. 특히 헝가리 왕국에서는 코슈트 러요시가 독립선언과 함께 공화정을 선포하였고 헝가리 독립군은 오스트리아군과 황제에 충성하는 크로아티아 왕국[2] 총독 요시프 옐라치치의 군대를 무찌르고 헝가리 전역을 장악했다.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군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분열을 호기로 삼아 오스트리아가 점유한 북이탈리아 지역인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으로 진격하였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 제국은 해체 직전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이곳 이외에도 혁명은 교황령[3], 토스카나 대공국, 영국령 아일랜드에서도 폭발했고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체코인의 주동으로 슬라브민족회의가 소집되어, 체코인과 폴란드인이 대거 참여하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과 영국을 제외한 주요 유럽 열강에서 혁명 운동이 폭발했던 셈. 러시아와 영국에서 혁명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상이한데, 러시아의 경우 아직 사회구조가 농노 해방도 이루어지지 않은 앙시앵 레짐 그 자체였기 때문에 입헌군주제나 공화정 같은 사상을 추구하는 세력 자체가 극소수의 지식인들을 제외하면 전무하다시피했다. 거기다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진압하여 그나마 외부에서 들여온 자유주의 등에 대해 미리 김이 빠진 탓도 있다. 그런 반면 영국의 경우는 러시아와 정반대의 경우로 이 시기 단연 산업화의 선두주자였고 이미 대중들의 대부분은 농민이 아니라 노동자였기 때문에 흉년으로 인한 불만이 클래야 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영국은 이 시기 이미 자유주의 정치체제가 확립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르주아의 불만조차도 없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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