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 1968 - 68 운동
Description:
1968년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반정부 운동을 의미한다. 이 사건은 20세기 후반 서구권에서 일어난 사회 변동 중 가장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넓은 의미에서는 1960년대 초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일련의 전세계적 사회운동을 의미하며, 보다 좁은 의미로는 1968년 5월~6월 사이 프랑스와 독일에서 일어난 대학생 주도 소요사태를 가리킨다. 학술적으로는 후자의 의미로 쓰일때도 많지만[124], 대중적으로는 전자의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사건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구미권의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가 중첩되어 일어났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폭발적인 성장과 이에 맞추지 못해 점차 표준화, 기계화되는 대학 서비스,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헝가리 혁명 이후 누적된 구좌파-신좌파간 갈등, 성차별, 인종차별, 양극화 등이 원인으로 제시되며, 베트남 전쟁은 청년 세대의 불만이 폭발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1962년 포트 휴런 선언과 1964년 버클리 자유운동, 1965년 와츠 폭동, 1967년 샌프란시스코 사랑의 여름 등으로 68혁명의 전주가 시작된 바 있으며, 미국에서는 1968년 1월 구정공세를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1968년 3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건물 폭파 사건과 다니엘 콘벤디트의 3.22 운동 조직을 계기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일본의 전학공투회의 운동,
이탈리아의 총파업,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
폴란드의 소요사태
멕시코 "틀라텔롤코 학살 사건"
결국, 1968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68운동의 종식을 공약하는 리처드 닉슨이 승리하고, 1968년 8월 프랑스 총선에서도 드골파 정당이 압승을 거두며 68운동은 실패로 돌아간다. 미국 한정으로 68운동은 1972년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나 1972년 대선에서 이들의 지지를 받은 조지 맥거번이 참패하고 이후 정국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흘러가며 대학생 운동권은 자연스럽게 소멸하게 된다.
단기적으로 68운동은 실패했으나, 장기적으로 그것은 서구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왔다. 학제 시스템의 개혁, 보수적 사회 분위기의 자유화, 성해방론의 등장, 환경주의의 주요 정치사상으로의 대두, 특히 유럽과 미국 사회를 수백년간 지배해온 기독교 이데올로기가 점차 붕괴하고 세속주의가 정착하는 등 그 여파는 엄청났다. 이를 두고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68운동의 유산을 해체하겠다는 정치가는 많지만, 그 정치가 본인조차도 68혁명이 몰고온 다양성의 가치가 없었다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을 것"[125]이라고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68혁명이 서구사회에 몰고온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으며, 그 영향이 서구 사회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논의만이 역사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Added to timeline:
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