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6, 1765 - 인지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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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mp Act
미국 독립 전쟁의 원인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국의 미국 식민지에 대한 과도한 조세 정책이다. 1763년 7년 전쟁의 결과를 논의하는 파리 강화 회담에서 영국은 식민지에 대해 조세 정책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설탕법〉, 〈당밀법〉 등으로 당밀, 설탕, 철, 소금 등의 수입품에 대해서 관세를 부과하였으나 간접세인 탓에 큰 반발이 따르지는 않았다. 문제가 된 것은 〈인지세법〉인데, 이는 신문, 일간지, 트럼프 카드 등 미국 식민지에서 출판되는 모든 출판물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는 간접세지만 관세가 아니라 내부세라는 점에서 식민지인들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왔다. 이에 식민지인들은 “대표가 없으면 과세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구호를 내걸고 영국의 과도한 조세 정책에 반발하였다. 즉, 미국 식민지에서는 영국 의회에 대표를 보낸 적이 없으니 이러한 법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은 이를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인지세법〉이 간접세의 추구라는 조세 원칙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인지세법〉을 철폐하였다.
미국 독립 전쟁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영국의 ‘인디언 보호구역’의 설정을 들 수 있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미국은 인디언과 연합한 프랑스와 전쟁하는 영국을 적극 지원하였다. 영국 승리 후, 식민지 미국인들은 비옥한 중서부지역으로의 진출을 기대하였지만 영국 정부는 이 지역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설정하였다. 그런데 인디언 보호구역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인들은 자꾸 중서부 지역으로 넘어가려하였고, 이 과정에서 식민지 주민과 인디언들의 분쟁이 자주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영국은 식민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어쩔 수 없이 군대를 파견해야 했고, 재정적 비용에 부담을 느껴 〈병영법〉을 제정한다. 〈병영법〉은 영국 군대 비용의 일부를 미국 식민지 주민이 부담하게 하는 것으로 많은 반발을 불러왔다.
또한 1770년 3월에는 보스턴 학살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는 미국 식민지인들이 보스턴에서 시가 행진을 하던 영국군과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보스턴 시민 5명이 사망하였다.
이러한 불만이 누적되어 마침내 1773년에는 미국 독립 전쟁에 결정적인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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